지난 1년간 여러 해커톤에 참여하면서 단순한 프로젝트 완성을 넘어, 스스로 어떤 분야에 강점이 있는지, 어떤 협업 방식을 좋아하는지 조금씩 알게 되었다.
1) 중력파 수치상대론 경진대회
물리 전공자로서 가장 깊이 몰입했던 해커톤이었다. 천체관측 데이터를 분석해 중력파의 근원을 추적하는 문제를 다뤘고, 실제 연구 현장에서 사용하는 분석 도구와 라이브러리를 처음으로 제대로 접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
정확히는, 중력파 검출기로 측정된 자료들을 PyCBC라는 파이썬 라이브러리로 분석하는 과제였다. 세 가지 단계의 문제가 있었는데:
- 첫 번째 문제는 PyCBC 라이브러리를 익히는 튜토리얼 수준의 문제 ()
- 두 번째는 중력파 신호를 여러 노이즈 속에서 실제로 검출해내는 문제
- 마지막은 그 중력파가 어디서, 어떤 두 천체(블랙홀이나 중성자별 등)의 충돌로 발생했는지를 추정하는 어려운 문제였다
중력파에는 다양한 형태(form)가 있어서, 주어진 raw data를 먼저 **FFT(Fast Fourier Transform)**로 주파수 영역으로 변환한 뒤, 미리 준비된 시뮬레이션 파형들과 matched filtering을 통해 비교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사실 내용 자체가 매우 어려웠다. 하루를 꼬박 새워서 분석을 시도했지만 결과의 정확도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신호 검출과 위치 추정 모두 오차가 컸고, 우리 팀은 그 이유조차 명확히 분석하지 못했다.
함께 참가한 친구와는 Git도 사전에 연습해두었지만, 막상 실전에서는 코드 관리보다는 오류 해결과 라이브러리 해석에 쫓기기 바빴다.
무엇보다 PyCBC 자체가 매우 복잡했고, 공식 문서도 설명이 부족했으며, 현장에 계시던 멘토분들도 라이브러리에 완전히 익숙하진 않아 실질적인 도움을 받기 어려웠다.
연구 현장에 쓰이는 툴과 장비는 생각보다 사용자 친화적이지 않다.
학교 수업에서 실험 장비를 다룰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었는데, 연구용 툴은 "정확한 기능"은 갖추고 있지만, 접근성과 친절함은 대개 부족하다.
이런 점에서 물리학, 특히 실험 물리학에 흥미가 다 떨어졌다.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형태의 대회였다. 이론 물리나 수학적 사고보다는 전산 수치해석과 라이브러리 운용 능력이 핵심이었고, 나에게는 물리학을 ‘실제로 다룬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처음으로 구체적인 감각으로 다가온 시간이었다.
2) 교내 아이디어톤 2023, 2024
교내에서 1박 2일로 열리는 스타트업 캠프라는 해커톤에 2023년, 2024년 두 번 참가했다. 실제로 개발을 하진 않고, 아이디어를 팀으로 기획하고 발표하는 형태의 아이디어톤에 가깝다. 하지만 이틀간 팀원들과 함께 창업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하고 몰입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내겐 정말 소중한 시간이었다.
2024년엔 우리 팀이 1등을 수상했다. 물론 그 결과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내게 남은 건 사람들과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책을 설득하는 방법’을 진짜로 고민해본 경험이다.
2025년에는 내가 지금도 만들고 있는 서비스, 디깅 뮤직을 아이디어로 제안했다. 처음에는 말로만 설명했는데, 팀원들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나한테는 명확한 문제의식이 있었지만, 그게 왜 중요한지, 이게 어떻게 해결책이 될 수 있는지를 다른 사람 눈높이에서 보여주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직접 사이트를 디자인하고, 실제 구현된 화면을 보여줬더니 그제서야 팀원들이 “이게 뭐하는 서비스인지” 제대로 이해했다.
그때 깨달았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라도, 전달 방식이 허술하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내가 어떤 문제를 중요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이미 그 문제에 관심이 많고 정보를 많이 접했기 때문이다.
난 원래 음악에 관심이 많았고, 가사를 가끔 찾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그 문제는 생소하고, 해결 방법도 낯설다.
그 뿐만 아니라 아예 뭔지 이해를 못하기도 한다.
그래서 더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조화해서 설명하고, PR을 잘해야 한다는 걸 그때 처음 뼈저리게 느꼈다.
그 이후로는 어떤 아이디어든 ‘어떻게 보여주고 설득할 것인가’까지 함께 고민하게 되었다.
3) Bubble 해커톤
Bubble.io를 이용해 아이디어를 실제 서비스로 구현하는 해커톤, 노코톤에 참가했다.
내가 메인 아이디어를 제안했고, 팀 내에서는 백엔드 구현과 워크플로우 설계를 맡았다.
우리가 만든 건 정신 건강 관련 앱이었다.
매일 카카오톡 알림을 통해 짧은 질문을 보내고, 그에 대한 응답을 분석해 사용자의 심리 상태를 추적하는 구조였다.
여기서 핵심은, 사용자의 불편을 최소화하면서도 심리 연구에 필요한 실제 설문 데이터를 자연스럽게 끼워넣는 설계였다.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연구소나 기관에 제공하고, 그로부터 비용을 받는 B2B 수익 모델을 구상했다.
12시간 내내 휘몰아치듯 개발했고, 마감 직전에야 겨우 완성했다.
“이 정도로 몰입하고 긴박하면 12시간만에 진짜로 서비스를 만들 수 있구나.” 싶었다.
이후 내가 디깅 뮤직을 만들거나 다른 서비스를 기획할 때에도,
그때의 몰입감과 집중 상태를 다시 꺼내오려고 많이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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